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(문단 편집) == 이후 == 국제적으로 미국의 인도양, 아라비아해 지역의 군사력 증강을 초래했다. 또한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세력확장을 두려워 한 [[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]]사태를 야기했다. 여기에 오랜 세월 계속되어 온 종파적 갈등의 재개는 [[이란-이라크 전쟁]]과 이슬람권의 분열로 표면화된다. [[이란-이라크 전쟁]]이 터지자 이란의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에 데인 서방 세계와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릴까 두려워한 [[사우디아라비아]]를 비롯한 [[수니파]] 왕조국가들, 심지어 [[중소결렬]] 이후 서로 쳐다보지도 않던 [[소련]]과 [[중국]]까지 대동단결해서 모두 한마음으로 이라크를 지원하게 된다. ~~전세계를 등에 업고도 이기지 못한 [[사담 후세인]]~~[* 그만큼 이라크의 기본 국력이 이란에 비해 밀리는 처지였고 애당초 양국 모두 경제가 빈약했기에 당연하다.] 단 소련은 시간이 흐르자 양다리를 걸친다. 이때 팔레비 왕조시절 도입해서 이란군이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던 미국제 무기의 일부가 소련에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있다. 대표적으로 소련이 이란에서 [[F-14]]를 넘겨받아서 분석했다는 썰. 미국 내에선 [[지미 카터]] 대통령이 '독수리 발톱 작전'의 대실패와 [[인플레이션]] 때문에 인기가 폭락, 대선에서 '''강한 미국'''을 외친 [[공화당(미국)|공화당]]의 [[로널드 레이건]]에 참패했다. 특히 도덕 외교를 내세운 지미 카터 행정부가 인질 석방 때 이란에게 저자세로 나오는것이 미국에서는 굴욕 외교, 행정부의 실패로 여겨졌고 미국 정치권의 전반적인 보수화 현상이 가속화 되었다. 또한 '독수리 발톱 작전'의 대실패로 체면을 구긴 [[미군]]은 실패원인을 각 군간의 협동체계 미비, 준비부족으로 분석하고, 대책으로 [[미합중국 특수작전사령부|미국 특수작전사령부]]를 창설해서 각 군의 특수부대를 한데로 모으게 된다. 같은 시기 [[대한민국]]은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을 위시한 [[제1세계]]의 시각에서 민주주의를 원하던 [[서울의 봄]]이 묻혀버렸고, 곧이어 일어난 [[5.18 민주화운동]]도 이란을 신경 쓰느라 바빴던 미국의 오판에 의해 [[신군부]]가 투입한 계엄군에게 잔혹하게 [[5.18 민주화운동/학살|시민들이 살해되는 참극]]이 발생한다.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Down_with_usa_mural.jpg]] 이 사건 이후 주 이란 미국 대사관은 [[반미]] 선전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대사관의 맞은 편에 있는 한 건물 벽면에는 사진처럼 반미 선전 포스터를 대문짝만하게 그려놓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